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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사도행전 26:1-18
바울의 간증(1-12)
[1] <바울의 변호>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해명할 기회를 주겠다.” 그러자 바울이 손을 들어올리며 변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 “아그립바 왕이시여, 저와 관련하여 유대인들이 고소한 것에 대해 오늘 왕 앞에서 해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3] 그것은 왕께서 유대인의 관습과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고 있는 문제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4] 모든 유대인들은 저의 일생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동족 가운데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5] 그들이 저를 안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려고만 했다면, 제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 사람이고,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생활하였다는 것을 증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지금 제가 여기 서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한 소망 때문입니다.
[7] 이 소망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이나 낮이나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시여, 바로 이 소망 때문에 저는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이 믿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9] 한때는 저 역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10] 제가 예루살렘에서 했던 일이 그런 일이었습니다. 저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는 일에 찬성했습니다.
[11] 저는 회당마다 찾아다니면서 여러 번 그들을 처벌했으며 강제로 예수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들을 향한 저의 분노가 어찌나 심하였던지 저는 다른 도시에까지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박해하기도 했습니다.
[12] <다마스커스 사건을 이야기하다> 그러다가 한번은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아 다마스커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 이야기(13-18)
[13] 왕이시여, 저는 그 곳을 향해 가다가 정오쯤 되어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저와 제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에 저는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로 차 보아야 너만 다칠 뿐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5] 제가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16] 일어나라! 발을 딛고 서라! 내가 이렇게 네게 나타난 것은, 너를 나의 일꾼으로 삼아 네가 본 것과 앞으로 내가 네게 보여 줄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7] 내가 너를 이 백성과 이방인들에게서 구원할 것이며,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어
[18]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고, 또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백성들과 한자리에 들게 하겠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2. 내가 만난 주님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이러나고 있습니까?
▧ 본문해설
바울의 간증(1-12)
아그립바왕은 이제 바울에게 자신을 위하여 말하도록 자유를 주었다. 세상의 부와 지위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사도는 그와 청중의 눈부신 허식이나 높은 계급으로 인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다. 세상의 장관(壯觀) 과 권세가 한 순간이라도 그의 용기를 꺾거나 그에게서 자제력을 잃게 하지 못하였다.
바울은 “아그립바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완고한 불신으로부터 나사렛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믿게 된 그의 회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바울은 처음에는 그를 말할 수 없는 공포심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으나 후에는 최대의 위안의 근원임이 증명된 하늘의 계시, 곧 그가 멸시하고 미워했던 분, 그 때에 그가 그분의 추종자들을 멸하려고까지 했었던 그분께서 그 가운데 좌정해 계셨던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묘사하였다. 그 때로부터 바울은 성실하고 열렬하게 예수를 믿는 새 사람이 되었으며 이와 같이 된 것은 변화시키는 은혜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행적, 435).
바울의 복음에 대한 변증의 극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바울의 변론은 좁은 의미의 단순한 변증이 아니며, 전도의 효과를 노린 적극적인 복음 선포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아그립바를 의식하여 자신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메시야를 증거함으로 인해 도리어 핍박받게 되었다고 역설적 상황을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폭로하거나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송사하는 이들과 자신이 별로 다를 바가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간증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회심 이야기(13-18)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서 분명하고 힘있게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하여 그 개요를 설명하였다. 그는 예언의 메시야가 이미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으로 나타나셨음을 증거하였다. 그는 어떻게 구약 성경이 메시야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나타나시리라는 것을 선언하였으며 어떻게 예수의 생애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윤곽을 그린 모든 세목들이 성취되었는지를 보여 주었다. 잃어버린 세계를 구속하시려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은 십자가를 참으시고 치욕을 가볍게 여기셨으며 마침내 죽음과 무덤을 이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 왜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느냐고 논하였다. 한때 그에게도 그렇게 보였으나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어찌 불신할 수 있을까? 바울은 다메섹 성문 곁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즉 예루살렘 거리를 거니셨고 갈바리에서 돌아가시고 죽음의 속박을 깨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을 틀림없이 보았다. 진실로 그는 게바, 야고보, 요한, 다른 제자들처럼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분과 담화하였다. 그 음성이 부활하신 구주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그에게 명하셨으니 어찌 그가 불순종할 수 있었겠는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와 유대 온 땅과 원방에서까지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증거하였고 각 계급의 사람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고 하였다.
온 무리는 놀라운 경험에 대한 바울의 말에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다. 사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 중에 아무도 그의 성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설득력 있는 웅변이 고조에 달하였을 때 바울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부르짖은 베스도로 인하여 방해를 받았다.
사도는 대답하였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그리고 그는 아그립바를 향하여 그에게 직접 말하기를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는 깊은 감동을 받아 한동안 그의 회중들과 그의 직위의 위엄을 잊어버렸다. 그가 들은 진리만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사신으로 그의 앞에 선 비천한 죄수만을 바라보고 아그립바는 무의식 중에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대답하였다(행적, 435).
한 사람이 한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것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나타내었다는 것과 주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고 그를 보내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행하게 하신다는 사실이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주님과 만나는 한 사람, 한 순간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로 만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변화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 적용
1. 나는 많은 대화 중에서 복음을 얼마나 강조하며 증거합니까?
2. 나는 주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내가 만난 주님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을 만난 귀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증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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