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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사도행전

안교교과 QT(9/17,월) - 바울과 벨릭스의 차이(행 24:10-27)

by ☆★★★ 2018.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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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 장년교과 12과.pdf

▧ 오늘의 말씀 : 사도행전 24:10-27

바울의 자기 변호(10-21)

[10] 총독이 바울에게 말하라고 몸짓하자,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각하께서 수 년 동안,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되신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관련된 일을 각하께 변명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11] 제가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올라간 것은 십이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각하께서 조사해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12] 그리고 저를 고소하는 사람들은 제가 성전 뜰에서 누구와 논쟁한 것이나, 회당에서나 도시 안에서나 사람들을 선동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13] 그리고 이들이 지금 저를 고소하고 있지만 총독 각하께 그 내용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4] 그러나 저는 각하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소위 이단이라고 말하는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책에 적힌 것도 다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15] 저는 이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든 불의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다시 부활하리라는 소망입니다.
[16] 그래서 저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저의 깨끗한 양심을 간직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17] 저는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있다가, 저희 민족에게 구제금을 전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려고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18] 그들이 저를 본 것은 제가 성전 뜰에서 정결 예식을 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소동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제 주위에 군중들이 모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19] 그 자리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저를 고소할 일이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각하 앞에 와서 저를 고소했을 것입니다.
[20] 그렇지 않으면, 제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공의회 앞에 섰을 때에 이들이 제게서 무슨 잘못을 찾아 냈는지, 여기 서 있는 이 사람들에게 말해 보라고 하십시오.
[21] 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한 말은 오직 하나, 곧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재판 받는 것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한 것 때문이다’라고 외친 것뿐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 벨릭스(22-27)

[22] 당시에 벨릭스는, 이미 예수의 ‘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여러분들이 제기한 고소 문제를 처리하겠소”라고 말하고서 재판을 연기하였습니다.
[23] 벨릭스는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잘 지키되,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친지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24] <벨릭스와 그의 아내를 전도하는 바울> 며칠 뒤에 벨릭스는 유대인인 자기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내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에 관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25] 그러나 바울이 정의와 절제하는 일과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자 벨릭스는 두려워하며 “지금은 그만하고 가시오. 시간이 나면 다시 그대를 부르겠소”라고 말했습니다.
[26] 그러면서도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바울을 자주 불러 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7] 두 해가 지난 후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바울을 그대로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불신자들과 신앙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나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2. 나의 모습은 바울과 벨릭스 가운데 누구의 모습에 더 가깝습니까?


▧ 본문해설  

바울의 자기 변호(10-21)

바울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과 체포되어 심문당한 전후 사정을 진술하였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고 하였다.
사도는 열성 있고 사뭇 성실함으로 말하였으며 그의 말은 그들을 크게 설득시키는 힘이 있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벨릭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의 행동에 관하여 동일한 증언을 하였다. 그보다 더 벨릭스 자신이 많은 사람들이 상상한 것보다 유대인의 신앙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바울의 분명한 진술은 벨릭스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사도에게 소요와 반역 행위의 죄를 씌우고자 한 동기를 더욱 분명히 알게 하였다. 총독은 로마 시민을 부당하게 정죄하여 그들을 만족시키고자 하지도 아니하였고 그를 공정한 심판도 거치지 않고 사형에 처하도록 그들에게 내어 주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벨릭스는 사리 사욕 외에 더 고상한 동기 따위는 알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칭찬에 대한 애착심과 승진에 대한 욕망의 지배를 받았다. 그는 유대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가 무죄한 것으로 아는 사람에게 완전한 공의를 행하지 못하였다(행적, 421).

재판정에서 자기를 변호할 기회를 갖게 된 바울은 아주 사리가 분명하게 자기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송사하는 이들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했고, 자신의 결백에 대해서도 조금의 양보없이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때로 참고 넘김도 바람직하지만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이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에는 분명한 시비를 밝히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강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신의 신앙문제에 이르러서는 송사하는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의 거리낌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음을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복음 앞에서 당당한 바울의 태도는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 벨릭스(22-27)

그 일 후 오래지 아니하여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바울을 불러 그에게서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듣고자 개인적으로 그를 만났다. 그들은 이 새로운 진리 곧 저희가 다시는 들을 수 없을지 모르는 진리, 만일 거절한다면 하나님의 날에 그들에 대하여 신속하게 증거할 진리를 듣고자 열심을 내기까지 하였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여기고 충실히 선용하였다. 바울은 그를 죽음에 처하게 할 권세나 그를 놓아 줄 권세를 가진 자 앞에 섰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는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칭찬이나 아첨을 하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그의 말이 그들에게 생명이나 사망의 냄새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모든 이기적 생각을 버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위기에 대한 느낌을 일으키고자 노력하였다...
벨릭스의 행동이 매우 난폭하고 잔인하였으므로 감히 전에 그의 성품과 행동에 흠이 없지 아니하다고 그에게 암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신앙과 그 신앙의 까닭을 분명히 선포하였고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본질인 이러한 미덕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게 되었으나 그의 앞에 있는 교만한 부부에게는 이것이 매우 현저하게 결핍되어 있었다(행적, 421).

수 일 후에 벨릭스는 바울을 불러 복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듣기를 청합니다. 하지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한 바울의 강론으로 생긴 두려움이 복음의 귀를 닫게 만듭니다. 사실은 복음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금전적인 욕심과 임기 말을 잘 보내기 위해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을 구류하여 두고 자주 부른 것입니다.


▧ 적용

나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바울처럼 당당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가?


▧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양심이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며, 아부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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