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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사도행전

안교교과 QT(8/29,수) - 아덴에서(행 17:16-34)

by ☆★★★ 201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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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 장년교과 9과.pdf

▧ 오늘의 말씀 : 사도행전 17:16-34

거룩한 분노(16-21)

[16] <아테네에서 전도하는 바울> 바울은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온 도시가 우상들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17] 그래서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인들과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날마다 토론하였습니다.
[18] 어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이 바울과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이 수다쟁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외국의 다른 신들에 관해서 말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19] 그들이 바울을 붙잡아 아레오바고에 있는 시의회로 데려가서 바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전하고 있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겠소?
[20] 당신이 하는 말은 우리에게는 무척 낯설고 새로운 것이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소.”
[21] 아테네 사람과 그 곳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말하거나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변증함(22-34)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시의회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23] 내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분이 섬기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 중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글을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섬기는 그 신에 대해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24] 그분은 온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며, 사람이 지은 신전에서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한 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겨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26]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으로부터 세계 모든 인류를 만들어 땅 위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 시대와 지역의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 안에서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시인 가운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2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 자신을 사람의 생각으로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금이나 은이나 돌 같은 우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30]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온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한 사람을 시켜 온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이에게 그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32]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내용에 관해 나중에 더 듣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3] 그리고는 바울은 그들을 떠나갔습니다.
[34] 그 때, 바울이 전한 말을 믿고 바울을 따르게 된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그렇게 믿게 된 사람들 중에는 아레오바고 시의회의 의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그 밖에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바울이 오늘을 산다면 세상의 어떤 모습을 보고 분노할까요?

2. 이 시대를 사는 나는 복음을 어떻게 변증할 수 있겠습니까?


▧ 본문해설  

거룩한 분노(16-21)

아덴 성읍은 이교국의 중심지였다. 이 곳에서 바울은 루스드라와 같이 무지하고 잘 속는 민중이 아니라 지성과 교양이 매우 훌륭한 백성들을 만났다. 도처에 있는 그들 신의 형상과 신격화된 역사와 시(詩) 의 영웅들의 조상(彫像)이 시선을 끌었고, 한편 장엄한 건축물과 그림들은 민족의 영광과 널리 성행하던 이교신의 숭배를 나타내었다. 백성들의 감각은 그 예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황홀해져 있었다. 사방에는 막대한 비용을 들인 사원들과 신전들이 크고 중후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전쟁의 승리와 고명한 사람들의 행위가 조각물, 사당 그리고 명판에 새겨져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아덴을 거대한 예술의 전당으로 만들었다.
바울이 주위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고, 또한 도시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보았을 때에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시는 것을 알고서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위한 질투심으로 분기되었고, 그들의 지적인 교양에도 불구하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덴 백성들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아덴의 위대한 사람들은 오래지 아니하여 백성들 앞에 새롭고 이상한 교리를 제시하는 어떤 특이한 교사가 저희 도시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이 바울을 찾아와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곧 청중들의 무리가 그들 주위에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그 사도를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그들보다 아주 못한 사람이라고 조롱할 준비를 하고서 저희들끼리 조롱하는 말로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라고 하였다. 다른 이들은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한 까닭에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라고 말하였다.
이교도 반대자들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 까닭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던 소크라테스의 운명에 그의 주목을 끌게 하였고, 그들은 같은 길을 따름으로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말도록 바울에게 권고하였다. 그러나 사도의 담화는 백성들의 주목을 끌었고 그의 꾸밈없는 지혜는 그들의 존경과 경탄을 받았다. 철학자들은 학문이나 풍자로 바울을 침묵시킬 수가 없었다. 또한 바울이 만사를 내걸고 자기의 사명을 성취시키며 복음을 전할 결심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말을 공평하게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런고로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인도하였다. 이 곳은 온 아덴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었으므로, 그 곳을 회상하고 연상하는 것은 결국 어떤 이들의 심중에 공포심을 일으켜 미신적인 경외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였다. 민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더욱 중요한 모든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 최종의 재판관으로서 일한 사람들이 종종 종교와 연관된 문제들을 주의 깊이 연구한 곳도 이 곳이었다...
이 엄숙한 책임의 시간에 사도는 평온하고 침착하였다. 그의 마음은 중대한 기별로 무거웠고, 따라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가 한가한 말장이가 아니라는 것을 청중들에게 확신시켰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들은 모든 지력과 총체적인 지식을 가지고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욱 큰 빛을 갈망하고 있는 어떤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한하신 분을 향하여 다가가고자 하고 있었다(행적, 235).

복음을 변증함(22-34)

바울은 우상이 가득 찬 신전을 향하여 손을 펼치고는, 그의 심령의 부담을 토로하면서 아덴 사람들의 종교상 오류를 폭로하였다. 그의 청중 가운데 가장 슬기로운 사람들도 그의 정연한 논리를 듣고 놀랐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의 예술 작품, 문학 그리고 종교에 정통함을 나타내었다. 그들의 조상(彫像)과 우상들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인간이 고안한 형상과 같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새긴 우상들은 아주 희미하게라도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 우상들은 아무 생명도 없고, 인간의 힘에 지배되어 사람의 손이 그것을 움직일 때에만 움직일 수 있는고로 그것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그 우상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바울은 상기시켜 주었다.
바울은 우상숭배자들인 청중들의 마음을, 거짓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 저희가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부른 그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견해를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바울이 지금 그들에게 선포한 그 존재는 사람에게서 독립하여 계시고, 능력과 영광을 더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셨다.
백성들은 참 하나님의 특성, 곧 그분의 창조력과 주관하시는 섭리에 대한 바울의 열렬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경탄하여 넋을 잃었다. 사도는 열렬하고 불일 듯한 웅변으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고 선언하였다. 하늘이라도 하나님이 계실 만큼 넉넉지 아니한데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들이야 얼마나 보잘것없겠는가.(행적, 236)

바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들을 귀가 있는 자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방법이 어떠하든지 전도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진리의 복음을 이 세상 속에 드러내고 증명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우상숭배가 만연한 이 땅을 바라보며 거룩한 분노를 품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동기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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