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 장년교과 6과.pdf
▨ 오늘의 말씀 : 로마서 4:13-25
세상의 후사의 언약(13-16)
[13]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율법을 통해 온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한 의를 통해 주신 약속입니다.
[14] 만일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쓸모가 없어지고 약속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15]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하지만, 율법이 없다면 율법을 범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 주어집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에게 약속을 은혜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의 율법 아래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전부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음(17-25)
[17]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다” 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도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18] 아브라함은 소망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19] 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굳게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22]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23]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24] 그 말은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될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되었습니다.
[25]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누가 아브라함의 후사가 됩니까?
2. 아브라함은 어떻게 바랄 수 없는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까?
▨ 본문해설
세상의 후사가 될 것임(13-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을 하셨습니다(창 17:7). 이 언약의 복은 율법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고, 믿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모든 축복을 우리가 이어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음(17-25)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말씀은 창세기 17장 14-22의 말씀을 해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7:16). 그때 아브라함은 웃으며 심중에 이르기를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고 말합니다(창 17:17). 이때 웃음이라는 말은 “피식 웃는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보면 아브라함은 전혀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백 세된 몸으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믿음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졌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용기나 자신감이나 신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믿음이 있었다는 것은 “나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믿는 믿음입니다. 또한 인간적으로 할 수 없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능히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창 17:1)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의는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율법은 의를 요구하고, 죄인은 율법에게 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제 그는 이것을 치룰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의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통해서 가는 길 뿐이다. 믿음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 아들의 순종을 죄인의 계정에다 두신다. 인간의 실패 대신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가납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고 회개하는 영혼을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의인을 대하듯 그를 대하시고, 그의 아들을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어떻게 의로 여기시는 바 되는가 하는 것이다”(리뷰 1890. 11. 4).
▨ 적용
1. 내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도 믿음의 후사임을 믿는가?
2. 나는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 오늘의 기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바랄 수 없고, 할 수 없는 가운데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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