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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오늘의 QT(1/22,수) - 원망을 들으시는 하나님(출 16:1-16)

by ☆★★★ 201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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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통독 : 출 16-17장

▧ 말씀묵상 : 출 16:1-16

먹을 것에 대한 원망(1-3)

[1]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모든 무리가 엘림을 떠나 신 광야로 갔습니다. 신 광야는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로부터 한 달째 되는 두 번째 달 십오 일이었습니다.
[2] 그 때에 모든 이스라엘 무리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죽이시는 것이 차라리 더 좋을 뻔했소. 이집트에서는 고기 삶는 솥도 곁에 있었고, 빵도 배부르게 먹었소.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내서 우리를 굶어 죽게 하고 있소.”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과 고기(4-16)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비를 내리듯 양식을 내려 줄 터이니, 백성들이 날마다 나가서 그 날에 필요한 양식을 거두도록 하여라. 내가 이 일로 백성들이 내가 가르친 대로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시험하여 볼 것이다.
[5] 매주 육 일째 되는 날에는 다른 날에 거두는 양보다 두 배 더 많게 거두어라. 다음 날 거둘 분량을 저장해 두어라.”
[6] 모세와 아론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7] 내일 아침이 되면, 여러분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보게 될 것이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그분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오. 우리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우리를 원망했으므로, 그분께서 그 원망 소리를 들으신 것이오.”
[8] 모세가 또 말했습니다. “매일 저녁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고기를 양식으로 주실 것이오. 그리고 매일 아침 여러분이 배부를 만큼 빵을 주실 것이오. 여호와께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오. 우리가 누구입니까? 여호와의 심부름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론과 나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 것이오.”
[9] 그리고 나서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무리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원망을 들으셨으니, 여호와를 만나러 나아오시오.’”
[10] 그러자 아론이 이스라엘 모든 무리에게 말했습니다. 아론이 말을 할 때에 무리가 광야 쪽을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하여라. ‘저녁이 되면, 너희는 고기를 먹게 되리라. 그리고 매일 아침 너희는 배부를 만큼 빵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천막들을 덮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이슬이 천막 주위를 덮었습니다.
[14] 이슬이 걷히자, 서리와 같은 얇은 조각이 땅 위에 있었습니다.
[15]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오.
[16] 여호와께서는 ‘사람마다 필요한 만큼 거두어라. 가족마다 식구 수대로 한 사람당 한 오멜 씩 거두되, 장막 안에 있는 가족의 분량도 거두어라’ 하고 말씀하셨소.”


▧ 묵상을 위한 질문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 가마와 떡을 배불리 먹을 때는 언제의 일입니까?

2. 영적인 은혜를 누림과 육체적인 만족함을 비교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 본문해설  

먹을 것에 대한 원망(1-3)

신 광야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여기서 수일 동안 머물렀다. 애굽을 떠난지 한 달이 되었을 때에 그들은 광야에서 처음으로 진을 쳤다. 그들이 준비해 온 양식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광야에는 목초가 부족했으므로 그들의 양떼는 줄어들고 있었다. 이 많은 군중을 먹일 양식을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까? 의심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다시 불평하기 시작했다. 백성의 관원들과 장로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지도자들에 대한 불평에 가담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그들은 아직까지는 굶주리지 않았다. 그들의 당장의 필요는 공급되었으나, 그들은 장래에 대하여 염려했다. 그들은 이 많은 군중이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굶주리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고난에 에워싸이고 그들의 양식이 떨어지게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이 지금까지 그들을 구원해 내신 당신께로 향하게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셨다. 만일 그들이 궁핍한 중에서 그분께 부르짖으면, 그분께서는 계속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돌보심의 증거를 나타내실 것이었다. 그들이 만일 당신의 계명을 순종한다면, 그들에게 질병이 이르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었다. 그런데도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굶어 죽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 편의 죄악적인 불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당신의 친 백성으로 삼으시고 저들을 광활하고 좋은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땅으로 가는 도중에 장애들을 만날 때마다 용기를 잃었다. 여호와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그들을 높이시고 고상하게 하시사 세상에서 칭찬받는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난관들을 만나고 궁핍을 견디는 것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비천한 상태에서 불러내시어 열국 중에 명예스러운 지위에 적합한 자가 되고 중요하고 거룩한 위탁을 받을 수 있도록 훈련하시고 계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을 생각하고 비추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더라면 그들은 불편과 결핍과 쓰라린 고통까지도 기쁨으로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그분의 능력의 증거들을 계속 보지 않으면 더 이상 여호와를 신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지긋지긋했던 종살이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을 속박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멸망시키는 천사가 모든 애굽의 초태생을 죽일 때에 어떻게 그들의 자녀들의 목숨이 보존되었는지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홍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장엄한 능력 역시 잊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 가운데 열린 길을 따라 안전하게 건넜으나, 그들을 추격하던 원수의 군대는 바닷물에 잠겨 버렸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눈앞에 당면한 불편과 시련만을 보고 느낄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해 오셨다. 우리는 노예였으나, 그분께서는 우리를 큰 민족으로 만드시고 계신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길의 어려움만을 말하고, 그들의 지루한 여행이 끝날 때가 있을까 하는 의아심을 품었다(부조, 282).
하나님은 내가 만나는 모든 문제들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고 따라야 합니다.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과 고기(4-16)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광야 생활의 역사는 세상 끝날에 사는 영적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의 이곳저곳으로 행진하던 모든 여정과, 그들이 당한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곤함 중에서,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현저히 나타내신 일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신 기록은 각 시대의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경고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히브리 사람들이 겪은 여러 가지 경험은 가나안에 있는 그들의 약속된 안식처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학교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사는 그분의 백성이 겸손한 마음과 온순한 정신으로, 고대 이스라엘이 겪은 시련들을 자세히 살펴서, 하늘 가나안을 위해 준비하는 일에 교훈을 받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그들의 불신과 원망에 몹시 놀란다. 그리고는 그들이 그때에 있었더라면 그처럼 배은 망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은 시련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이 시험을 받을 때에라도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나은 신앙과 인내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과정에 대하여 불평한다. 그들의 현재의 필요가 공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빈곤이 그들에게 이르러오지 않을까, 저희 자녀들이 고통 가운데 버려진 바 되지나 않을까 늘 걱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불행을 예상하거나 실제로 존재하는 어려움들을 과장함으로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그들이 감사해야 할 많은 축복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만나는 장애물들이 그들을 힘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도록 이끄는 대신에 그들을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불안과 불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불신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왜 우리가 배은 망덕하고 불신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다. 온 하늘은 우리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근심과 공포는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우리는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 뿐, 시련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근심과 걱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행복이 이 세상 사물로 이루어져 있는 양, 미래의 필요를 대비하는 일을 우리의 생애의 주요한 추구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불신을 조금도 품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백성이 근심에 눌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는 우리의 길에 위험이 전혀 없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죄악 세상에서 데려가시겠다고 제의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결코 실패함이 없는 피난처를 가리켜 주신다(부조, 293).

혹 어려워 보이는 환경 때문에 부모님과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까? 불평과 원망보다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갑시다.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나에게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 적용  

1. 나는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어려운 환경 때문에 예전에 누렸던 은혜의 때를 무시하고 죄 가운데 있었던 부끄러운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어떻게 하면 불평과 원망의 생각을 버릴 수 있을까요?  


▧ 오늘의 기도  

주님, 나를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평과 원망 대신 기도의 줄을 놓지 않게 하소서. 언제나 하늘로서 내리는 주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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