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7:24-35
가장 위대한 사람(24-28)
[24] <침례자 요한에 대하여> 요한의 심부름을 왔던 사람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한에 대해 말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멋지고 호사스런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은 궁전에 있다.
[26] 그러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다.
[27] 이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자이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너보다 앞서 준비할 것이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29-35)
[29] 이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과 세리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다고 여겼습니다.
[30]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하고 요한에게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31] “이 세대의 사람들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이들은 시장에 앉아 서로 부르며 ‘우리가 너희를 위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았다. 우리가 울어도 너희가 울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33] 침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너희들은 ‘저 사람은 귀신이 들렸다’라고 말한다.
[34] 인자가 와서 먹고 마셨다. 그러자 너희들은 ‘봐, 저 사람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구나’라고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는 그것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께서는 요한을 어떤 사람으로 높이셨습니까?
2. 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복음을 거부하였습니까?
▧ 본문해설
가장 위대한 사람(24-28)
"하늘이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크게 여기는 것 곧 그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나, 지위나, 훌륭한 가문이나, 지적 선물이 아니다. 만일 보다 더 고상한 어떤 것들을 고려함 없이 지적 위대함이 영예를 받을 만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의는 그 누구도 그에 필적할 만한 지능을 갖지 못했던 사단에게 돌려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섬기는 데 악용될 때에 그 선물이 크면 클수록 그 저주도 크게 된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도덕적인 가치이다. 사랑과 순결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속성이다. 요한이, 산헤드린이 파견한 사자들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나,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영예를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약속하신 분으로서 가리켰을 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하였다. 그리스도의 봉사를 보고 느낀 그의 이기심 없는 기쁨은 일찍이 사람이 나타낸 것 중에서 가장 숭고한 형태의 기쁨을 보여 준다...
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선지자보다 나은 자”였다. 그 이유는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을 멀리서 바라보았던 반면에 요한은 예수님을 보았으며 그분이 메시야가 되신다는 하늘의 증언을 들었으며 그분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요한은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였다. 그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율법과 선지자가 그리스도교의 시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보이기 위하여 섰다. 그는 더욱 큰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었다"(219-220).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29-35)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의 메시지를 들은 두 무리의 상반된 반응에 대해 말씀하시고, 침례 요한의 증거와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한 무리들의 완악함을 장터에 노는 아이들의 비유를 통해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요한의 침례를 받았던 일반 백성과 죄인으로 천대받던 세리들은 하나님을 의롭다한 반면, 스스로 하나님께 열심인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던 율법사와 바리새인은 영적 교만에 빠져 침례 요한이 메시야로 증거하는 자신과 복음을 거부하였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복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복음이 주는 참된 평안을 맛보지도 못합니다. 형식주의에 빠져 기쁨과 행복없이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 적용
1. 나는 침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얼마나 앞장서고 있는가?
2. 나는 영적인 교만에 빠져 복음을 거부하지는 않는가?
▧ 오늘의 기도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며 더욱 주님을 증거하며 살게 하소서. 아직도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사, 복음을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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