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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여호수아

오늘의 QT(11/17,수) - 악의 옷을 제하라(수 7:19-26)

by ☆★★★ 201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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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수 7:19-26

죄의 고백(10-23)

[1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22]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23]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아골 골짜기(24-26)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26]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간은 어떤 태도로 회개하였나요?
2. 왜 아간과 그의 자녀들 모두를 징계하였을까요?

▧ 본문해설

죄의 고백(10-23)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죄의 고백이 아간의 고백과 매우 흡사하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지만 양심에 있는 죄와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오게 한 그 죄를 고백하기는 거절한다. 이기심과 과욕의 죄, 하나님과 이웃에게 부정직한 죄, 가족들 간의 죄, 마땅히 공중 앞에서 고백해야 할 다른 많은 죄들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순수한 회개는 죄의 비열한 성질을 깨닫게 될 때 우러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이같은 일반적인 고백은 하나님 앞에 영혼을 진정으로 겸비하게 낮춘 결과가 아니다. 이러한 고백들은 죄인으로 하여금 전과 같이 자기 찬양의 정신을 계속 갖게 하여, 결국 그의 양심은 무디어진다. 경고들은 그로 하여금 위험을 느끼지 못하게 하며, 그의 죄의 길은 옳게 보여진다. 그의 죄가 드러날 때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늦다. 그날에 그는 제물이나 예물로는 영원히 속함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실들이 입증되고 난 다음에 그 사실들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과 우리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죄들을 고백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사인즈 1881. 5. 5).

아간이 매우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책임있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슬픔의 원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런 경우에 그의 백성들에게 진노하심을 나타내어 보이신다. 백성들의 죄의 무게를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 그리고 주의 책망으로 인하여 영혼의 고통을 느끼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그 일에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다. 죄인인 아간은 그 일에 책임을 하나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 일을 매우 차갑게 취급하였다. 우리는 그가 괴로움을 느꼈다는 의미가 담긴 말을 한마디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가 크게 후회한다거나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판단해 볼 수 있는 말, 곧 “백성들 위에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가져오게 한 것은 나의 죄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한 아무 증거가 없다. “우리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내가 금덩어리 하나와 시날산의 외투 한벌을 훔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는 죄의 고백과 영혼의 겸비로 잘못을 옳게 바로 잡아 보려는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편지 13, 1893).

아골 골짜기(24-26)

엄숙하고 명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동일한 죄가 범해지고 있지 아니한가? 아간에게 여리고의 노획물을 훔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그 같은 탐욕에 방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선언하셨다. 우리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골 3:5; 마 6:24; 눅 12:15; 엡 5:3)는 경고를 받고 있다. 우리 앞에는 아간과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무서운 운명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보다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하늘의 영광과 복락을 영원히 상실한 “아침의 아들” 루스벨의 무서운 운명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탐욕은 매우 많다.
어느 곳에서든지 탐욕 투성이의 더러운 자국들이 보인다.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한다. 이 탐욕이란 악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교회 안에서까지도 이기심과 허욕과 속이는 일과 자선사업의 태만과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일을 얼마나 쉽게 볼 수 있는가! “선량하고 교회에 잘 다니는” 교인들 중에 슬프게도 많은 아간들이 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아와 주의 식탁에 앉으나 저희 재산 중에 불법적으로 취한 것 즉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물건을 감추어 둔 자들이 많다. 많은 군중들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위하여 양심의 호소와 천국의 소망을 희생한다. 많은 무리들이 그들의 성실과 훌륭하게 될 가능성을 돈주머니와 바꾼다. 가난한 자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무시되고, 복음의 빛이 전파되는 일이 방해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자들의 거짓된 행동으로 인하여 속인들의 조롱이 불타오르고 있으나 여전히 탐욕적인 그리스도인은 재물 모으기를 계속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부조, 496).
왜 아간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벌을 받았을까? 그 까닭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큰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의 지시를 따라 훈련과 교육을 받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간의 부모들은 아간이 거침 없이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방치하였고, 그의 생애에 되풀이 되어 나타난 이같은 원리들은 그의 부모들을 또한 부패케 하는 영향을 미쳤다. 정신은 다른 정신 위에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한다. 아간의 식구들을 다 그 징벌에 포함시킨 것은 그들 모두가 다 그 죄에 연루(連累)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원고 67, 1894).

▧ 적용
1. 형벌이 두려워하는 피상적인 회개보다는 나의 죗됨을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2. 나의 선택과 삶의 모습은 내 가족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 오늘의 기도
주님, 욕심에 이끌려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간의 죄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항상 주 앞에 정결한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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