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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QT

안교교과 QT(5/18,금) - 더 깊은 연구를 위해(마 25:31-46)

by ☆★★★ 201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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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2기-장년교과-7과.pdf

▧ 오늘의 말씀 : 마태복음 25:31-46

칭찬받을 사람들(31-33)

[31] “인자가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 다시 와서,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 때에 세상 모든 나라가 그 앞에 모일 것이며,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인자가 사람들을 나눌 것이다.
[33] 인자는 자신의 오른쪽에는 양을, 왼쪽에는 염소를 둘 것이다.
[34] 그 때 왕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은 너희들이여, 와서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나라를 물려받아라.
[35] 내가 배가 고플 때, 너희는 내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목마를 때, 너희는 마실 것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로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초대해 주었다.
[36]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는 내게 옷을 입혀 주었다. 내가 아플 때, 너희는 나를 돌보아 주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찾아 주었다.’
[37] 그 때, 의로운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언제 주님께서 배고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음식을 주었습니까? 언제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실 것을 주었습니까?
[38] 언제 나그네 된 것을 보고, 우리가 초대하였습니까? 언제 헐벗으신 것을 보고, 우리가 옷을 입혀 주었습니까?
[39] 언제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또 아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40] 그 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 곧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저주받을 사람들(41-46)

[41] 그리고 나서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42] 내가 배가 고플 때,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목마를 때, 너희는 마실 것도 주지 않았다.
[43]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입혀 주지 않았다. 내가 아플 때나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44] 그 때, 그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주님, 언제 주님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거나, 헐벗었거나, 아프거나,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돌보지 않았습니까?’
[45] 그 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이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46] 이 사람들은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판단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2. 내가 더욱 힘써야 할 자발적인 섬김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해설  

칭찬받을 사람들(31-33)

민족들이 그리스도 앞에 모일 때에 두 부류로만 나누어질 것이며 그들의 영원한 운명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도와주었느냐 또는 도와주지 않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날에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그 큰 일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을 위하여 행한 충성스러운 일을 나타내신다. 그분은 오른편에 선 자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자들은 저희가 그분을 섬겨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리둥절한 그들의 질문에 그분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대답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과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저희 가정에서 내어 쫓길 것이며 빈곤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궁핍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힐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친구나 가정을 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은 이 세상에서 백배를 받으리라고 약속하셨다. 다음에 그분은 저희 형제들을 섬길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축복을 확약하셨다. 내 이름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모든 자들 가운데서 그대는 나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나를 섬기는 것처럼 그들을 섬겨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대가 내 제자라는 증거이다.
하늘 가족으로 태어난 자는 모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 주님의 형제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당신의 가족들을 한데 묶어 연합시키며 어디서나 그 사랑이 표현되는 곳에서는 친족 관계가 나타난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요일 4:7).
심판 때에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실 자들은 신학이란 학문을 알지 못했을는지도 모르나 그리스도의 원칙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거룩한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그들은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비록 이방인 가운데서일지라도 친절한 정신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으며 생명의 말씀을 듣기 전에라도 그들은 선교인들을 도와주었으며 저희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섬긴 자들이 있다.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르고 섬긴 자들 즉 인간의 도움을 통하여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일지라도 멸망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은 알지 못하였으나 자연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율법이 요구하는 일들을 행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킨 증거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다.

민족들에게서 그리고 이방인 가운데서 미천한 자들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구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 될 것인가! 그분을 따르던 자들이 칭찬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놀라움과 기쁨으로 쳐다보는 것을 바라보실 때 무한하신 사랑의 소유자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실 것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계층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분은 자신을 인간의 모든 아들과 동일시 하신다. 우리를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분은 이 세상 가족의 일원이 되셨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시며 따라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의 형제가 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멸망하는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분리된 것처럼 느끼지 말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란 큰 거미줄의 일부분이며, 하늘은 그들을, 성도들뿐 아니라 죄인들의 형제로 여기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타락하고 잘못을 범하고 죄많은 자를 포섭하시는바 타락한 영혼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행한 모든 친절한 행위 즉 자비의 행동은 당신에게 행한 것과 똑같이 받으시는 바 된다.(소망, 637-638).

저주받을 사람들(41-46)

그리스도의 왼편에 있는 자들 즉 가난하고 고통하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 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들을 눈멀게 하였고 그들은 저희가 저희 형제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곤경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 부자들에게 당신의 고통받는 자녀들을 구제하고 위로하도록 재물을 주셨으나 너무도 흔히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형제들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을 가난한 사람의 처지로 바꿔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자의 유혹과 투쟁을 이해하지 않으므로 저희 마음에서 자비심이 소멸되었다. 부자는 값진 주택에 살고 화려한 교회 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담을 쌓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곤궁한 자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주신 재물을 교만과 이기심에 탐닉되어 함부로 소비한다.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상하신 자비에 대한 교육을 날마다 빼앗기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활 필수품들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를 하셨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생활을 압박하는 가난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때때로 시기심과 질투심과 사악한 억측으로 가득 차게 된다. 스스로 곤궁의 압력을 참고 견뎌본 적이 없는 자들은 너무도 흔히 가난한 자를 경멸하는 태도로 대하며 그들이 거지처럼 보인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사실을 바라보시면서 배고프고 목말랐던 자는 나였다고 말씀하신다. 나그네였던 이는 바로 나였다. 병든 자는 나였으며 옥에 갇힌 자도 나였다. 그대가 풍족하게 차린 그대의 식탁에서 즐기고 있을 때에 나는 오두막집에서나 혹은 행인이 없는 거리에서 굶주리고 있었다. 그대가 호화스러운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에 나는 머리 둘 곳이 없었다. 그대가 옷장을 값진 의복으로 꽉 채우고 있을 때에 나는 헐벗고 있었다. 그대가 향락을 추구할 때에 나는 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대가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빵 조각을 나누어 주었을 때, 그들로 하여금 몸에 스며드는 냉기를 피하도록 보잘것 없는 의복을 주었을 때 그대는 영광의 주님께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는가? 그대의 온 생애 동안 나는 이 고통당하는 사람 가운데서 그대와 가까이 있었으나 그대는 나를 찾지 않았다. 그대는 나와 친근하게 교제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생애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 즉 그분이 밟으신 곳을 걸어보고 그분이 가르치기를 좋아하시던 호숫가를 바라보고 그분의 눈이 때때로 머무르던 들과 골짜기를 바라보는 것은 큰 특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에 갈 필요는 없다. 우리들은 병상 곁에서나 빈곤한 오두막집에서나 사람이 많이 모인 대도시의 뒷골목 길에서나 인간의 마음에 위안이 필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지상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행하므로 우리는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행할 수 있다(소망, 639).


적용

나는 섬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나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지극히 작은 형제가 바로 주님이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고  내 이웃과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주님 대하듯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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