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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정치가 군주 정치 형태로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왕을 선택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셨다. 히브리인들도 왕의 선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정도로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였다. 베냐민 지파의 기스의 아들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다.
장차 왕이 될 사울의 용모는 왕을 갈망하던 자들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킬 만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삼상 9:2)었다. 고상하고 존귀한 태도와 혈기 왕성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키가 큰 사울은 존경을 받을 자로 태어난 것 같았다. 사울은 이와 같은 매력적인 외적 용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참된지혜로 구성된 보다 높은 자질은 결핍되어 있었다. 사울은 청년기에 그의 조급하고 격렬한 감정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하나님의 은혜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도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사울은 권세 있고 부유한 두령의 아들이었으나 소박한 그 당시의 형편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겸비한 농부의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가축 얼마가 산에서 길을 잃었으므로 사울은 한 사환을 데리고 그것을 찾으러 나갔다. 그들은 3일 동안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그들이 사무엘의 고향 라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사환은 잃어버린 가축들에 대하여 물어보자고 제의하였다. 그 사환은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그 당시의 습관을 따르는 것이었다. 계급이나 직분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찾아갈 때에는 그에게 존경의 표시로서 작은 선물을 드렸다.
그들이 성읍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물길러 나오는 몇 명의 소녀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선견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종교적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선견자가 이미 도착하였으며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희생의 잔치가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의 통치 하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에는 성소에서 드리는 예배가 멸시를 당했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삼상 2:17)였다. 그러나 지금은 온 나라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행해지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종교적 예배에 관심을 나타내었다. 성막에서 드리는 봉사가 없었기 때문에 제사는 당분간 다른 곳에서 드렸는데 백성들이 교훈을 얻으려고 자주 가던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성읍이 이 목적을 위하여 선정되었다. 이 성읍들 중 가장 높은 곳을 흔히 제사드리는 곳으로 선택한 고로 그 곳을 산당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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